성공회 예산교회 약사
교회 초기 예산교회 단체사진
예산교회는 1917년 1월 16일 김바우로 전도사에 의하여 전도가 시작되었다. 임성면 예산리 136번지에 3간 초막을 사들여 목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같은 해 11월에 구건조 바나바 신부에 의해 여섯 명의 교인이 망세를 받았다. 이후 1925년 5월에 예산읍 466번지에 큰 집을 매입하고 7월 1일에 성바우로 성당으로 축복하였다. 이 당시에 사제는 거의 상주하지 않고 부대동교회의 사제가 출장하여 성사를 집전했다.
한편 예산읍 근처인 오천리와 공전리에서도 1911년부터 1914년 사이에 기도실을 마련하고 상당수의 교인들이 전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한때 공주군 모금리에 전도활동을 가졌던 사실이 있다.
그 후 예산교회는 1943년 4월에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교회가 폐쇄되었다. 25년이 지난 1968년 폐허가 된 성당을 수리하여 다시 시작하고, 1969년에 초대 관할사제로 박승시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1976년에 대지 400평 건물 100평 규모로 지금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예산교회의 부속기관인 신명유치원은 1917년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1928년에 인가가 되었다. 1943년에는 일제에 의하여 운영권을 몰수당했다. 그리고 60년대에 장로교회에서 신명유치원이란 이름으로 무단 운영되다가 1970년 다시 운영권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운영을 시작하였다.
특별히 신명유치원은 충남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유치원으로서 유아교육기관의 개념이 취약하던 당시 신명유치원의 존재는 우리나라 유아교육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명유치원의 폐쇄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공회의 사립학교는 서울 항동의 성베드로학교, 그리고 성공회대학교만 남게 되었다. 올해 예산교회와 신명유치원은 101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대 시무 성직자 명단
구건조 신부, 조용호 신부, 이원창 신부, 최 근 신부, 심홍섭 신부, 소영필 신부, 박승시 신부, 서병오 신부, 박승시 신부, 우덕기 신부, 박명순 신부, 석균우 신부, 김현근 신부, 전재명 신부, 이찬희 신부, 이정운 신부, 이윤기 신부, 정순용 신부, 김진호 신부.
1960년대의 신명유치원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