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의 책방/책방모임

2018/08/07 '의심의 정당성'과 '고통의 문제'

대한성공회 예산성당 2018. 8. 8. 23:16

금주 독서모임에는 인턴십에서 알게 된 지인분이 합류하였습니다.

그래서 총 4분이 참여하고 계시고, 한분은 집에서, 또 한분은 직장에서 읽고 계십니다.

직장에 계신 분은 화요일에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책 나눔을 했습니다. 

9월부터 시간이 가능하셔서 직접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혼자 읽을 줄 알았는데 회원들이 하나 둘 늘어가니 감사한 일입니다.

성서 말씀 그대로 '기대로 하지 않았던 일'(2고린 8:5)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성공회의 신앙에 대한 내용을 읽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존재 증명과 최근의 경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경험에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들을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신앙을 가지면서도 의심이 많은 분도 계셨고, 신이 없다며 오랜 세월 살아오신 분도 계십니다.  


책의 내용중에서 "의심을 품고서도 여전히 성공회 신자로 남을 수 있나요?"라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성공회의 신앙은 시편 77편의 내용을 통해서 의심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의심과 질문은 언제나 환영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알수 없는 것에 대해 단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회의할 수 있는 신앙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왜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나요?"라는 단락에서 동남아시아의 쓰나미와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신 고통이라면 과연 그 신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http://skyesan.tistory.com/140)이 참고가 되겠지만,  

책의 내용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은 두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고 나왔습니다.


하나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랑이 이토록 큰 가치가 있음을 세상이 깨닫게 하려 함'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악과 고통의 비극에 대해 하느님 또한 몸소 겪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셨고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직접 달리셨습니다.

즉 그분은 우리가 고통을 당할때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위의 답변중 이성적인 첫번째 답변보다 두번째 답변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는 죽음의 충격과 죽음 이후의 부재가 주는 상처를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내용처럼 언제나 부활은 찾아오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언제나 길은 있기 마련입니다.

   

다음 주 독서내용은 진화론과 과학, 그리스도교가 오랜 시간 고백해온 신경입니다.

꼭 책이 원하는 대로 토론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신앙에 있어 여전한 의심과 회의감은 당연한 것일테니까요.  




화요일 밤마다 성당의 불이 켜지니 보기가 참 좋습니다.



선물받은 안토니오 성인 액자인데 저기에 두니 심토니 다방이 되었습니다. 

커피덕후도 아닌데 하나 둘 늘어나네요. 용량별로 드립도구들을 추가했습니다.

조만간 특이한 커피강좌를 개설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아침에 볶은 예가체프,

고장난 에어컨땜에 냉커피가 인기만점.^^





네팔서 사온 네팔 차를 마셔봤습니다. 

왼쪽은 밀크티용 홍차, 가운데는 rhododendron 차는 꽃잎차인데 진달래과에 속한 네팔 고유차입니다.

그리고 민트티인데 오늘은 가운데 rhododendron(발음이 왜 이따구?)을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차 맛이 엄청 좋더군요.

담주는 민트티를 먹을 생각입니다.


"여보 집의 물건들이 자꾸 없어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