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17/예산교회 재건일지

2017/10/10 대한성공회 역사자료관을 가다

대한성공회 예산성당 2018. 4. 15. 21:29

"대한성공회 역사자료관을 가다." (2017년 10월 10일 화요일) 


예산교회 자료를 찾기 위해 성공회 역사자료관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성공회대학교 도서관 2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한성공회의 초기 역사에 대한 적잖은 자료들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비단 성공회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아직 분류되지 않은 한국의 근대사와 관련한 소중한 자료들도 있습니다.

더 많은 연구인력과 행정 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다소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예산교회와 관련하여 22점의 사진자료를 발견하였습니다.

차후에 신명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드럼스캔을 받아놓았고 해당 사진 파일들을

예산 지역신문사인 무한정보 신문사 장 기자님께 전달해드렸습니다.

혹시나 역사자료관을 방문하실 분들은 도서관 입구에서 역사자료관 방문하러 왔다면 출입구를 열어드립니다. 

성공회 각 교회들이 교회의 역사를 소중히 보관하고, 이곳에도 기증하기를 바래봅니다.   



역사자료관, 성공회 대학교 도서관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수집된 초기 유물들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보관하고 있다.



교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역대 주교님들의 사진(존 코프에서 이천환 주교님까지)



위 천군전은 대학교회의 채플이다.



한국인 최초 사제인 김희준 사제의 글, 그는 한학에도 밝은 분이었다. 


 

천군전의 역사


각 교회에서 사용하던 유물들


호주 선교사로 한국에서 활동한 구두인(Goodwin) 신부의 약력

그는 주로 신학교에서 학문을 가르쳤다.



구두인 교수가 사용하던 물건들,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는 내가 잠시 썼던 올림푸스 TRIP 35이다.


 

각종 일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정의사제실천단의 일지였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은수미 안젤라님을 위한 탄원서였다.

그분이 영등포교회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힘든 시기를 겪어낸 그녀의 의정생활에 하느님의 보호가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서울교구 강화교무구의 전도구 지부회 회의록이다. 모두 다 한문이다.ㅜㅜ



1920년 장림교회(현 서울주교좌성당)의 공도일지이다. 죄다 영어 흘림체다.



1892년의 존 코프 주교님의 사목일지다. 꼼꼼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깨닫게 된다.



부활촛대


은퇴하신 김성수 주교님의 학생시절의 글로 보인다.



일찍 요절하신 이춘기 신학생의 글로 보인다. 정의감이 남달랐던 분으로 알고 있다.


초기 유물들



성가수녀원에서 사용하던 면병틀과 제조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저 소면병과 대면병의 마크는 지금도 사용중이다.


 

대학성당인 천군전에 처마에 달렸던 종으로서 미사시간을 알려주는 종이었다.



수입되어 사용했던 발 오르간


박물관이 아닌 자료관이다보니 전시가 좀 어색하지만

연도별로 중요 사진을 확대하여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천환 주교님이 영국 유학시절 사용했던 여행가방


1928년에 발행된 선교 소식지 창간호



수원교회 부재열 사제(G. A. Bridle)의 사목일지이다. (1904-1914)

부재열 신부는 영국인 신부로서 1907년 부대리교회(현 부대동교회)를 설립한 분이다.

사목일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1932년에 창간된 신학연구지 '원우'이다.


천군전에서 신학생들이 사용하던 향로, 종, 성체함이다.

오른쪽 추의 용도는 잘 모르겠다.


자료관에서 근무하시는 저 백발의 어르신은 현재 대한성공회의 역사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시다.

함께 근무하시는 박정숙 모니카님은 사진을 못 찍었다.

박 모니카님은 예산교회 자료를 찾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성공회의 문서자료들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아직 많은 자료들이 분류되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다.

교구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모니카님과의 대화를 통해 각 교회의 어르신들을 통해서 구술자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의 역사 자료 발굴과 보관의 중요성을 깨달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