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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되어 전쟁 후 황폐화된 예산성당

예산교회는 1943년 4월 일제의 의해 폐쇄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본격화 됨에 따라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영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일제는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을 강제 추방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대한성공회의 모든 영국인 선교사들도 1942, 43년을 전후로 모두 추방되었다.

따라서 한인 사제들은 지방을 떠나 서울과 경기도 주요 성당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예산성당의 시무사제였던 조용호 사제도 예산을 떠나 인천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인천성당에 있으면서도 예산교회의 소식을 들으니 당시 예산교회의 부지가 꽤 컸는데 일본인 군수가

교회 부지 일부까지 군수 사택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심상영 사모의 말씀에 몇 일을 고민하다가

내려갔다와야겠다고 하시며 비장한 다짐과 함께 예산에 내려와 군수와 담판을 지어 당시 교회 부지를

그대로 지킬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 유명희 테레사 사제-

 

 

폐허가 된 예산교회,

공사중인 모습과 노정빈 선교사의 랜드로바 차량으로 미루어보아

성당을 다시 보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

 

 

 

 

황폐화된 예산교회 실내(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