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썸네일형 리스트형 주님 나를 부를 때 신대원에서 중창으로 불렀던 이 영상을 가끔 듣는다. 급조된 조직이라 부족한 실력이지만 힘과 용기를 선사한다. 가끔 앞이 안보이고 절망스런 마음이 드는 날, 동료들과 함께 불렀던 이 노래를 듣는다. 성공회 성가 403장, "주님 나를 부를 때..." 주님 나를 부를 때 나 주를 따르리 나는 그 길 가리라 낯설고 험해도 주의 사랑 알리고 주의 이름 전하리 나는 우리 주님과 늘 함께 하리라 주님 나를 부를 때 내 이웃 섬기리 세상속에 갇힌 자 주 알게 하리라 약한 사람 돌보는 참된 친구 되리라 주님 말씀 가운데 늘 함께 하리라 주님 나를 부를 때 나 마음 먹으리 모든 걱정 두려움 다 떨쳐 버리고 세상 변화 시키는 굳센 믿음 갖겠네 몸과 마음 다하여 나 헌신하리라 더보기 선교형 교회 세미나에 다녀오다. '선교형 교회'(Mission Shaped Church), 혹은 '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에 대한 관심이 개신교에서도 점차 증대되고 있다. 영국성공회에서 이미 시작된 새로운 교회에 대한 일련의 실험들은 대한성공회에서도 몇 년 전부터 소개되고 실천되고 있다. 결국은 새로운 시대, 세대에 대한 교회론의 새로운 정립이다. 실천신학적으로 좀더 들어가보면 공공신학, 즉 교회의 공공성과 조우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주제인지라 기차를 타고 서울대성당에 올라갔다왔다. 대전교구 오동균 신부님이 기조발제를 하셨다. 타 교단에서도 관심을 갖고 찾아오셨다. 오신부님의 주제는 '한국상황에서 본 Fresh Expression의 의미'다. 두 번째 발제는 'Fresh Expression의 입장에.. 더보기 기념비에 대한 생각 100주년을 넘긴 성당에 기념물을 세운다면 두 가지를 하고 싶다. 하나는 예산교회에 첫 부임지로 오셔서 6.25동란때 순교하신 조용호 신부님의 추모비와 2017년에 폐원된 신명유치원 기념비와 기념 식수를 심는 것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그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는 자들의 특권이다. 용산역 일본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추모비 더보기 토마토가 열렸네 5일장에서 사온 토마토 모종 텃밭을 만들어 심고 나서 신명텃밭이라 일컬었다. 몇 일 사이에 토마토에 드디어 열매가 달렸다. 오 신기방기~ 씨앗에 우주가 들어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넌 뭐니?? 더보기 오랜 친구 2018. 05. 17 예당저수지 산길 혼자 걷다보면 사람 그리울 때 있다 해지는 강변 쭈구려 앉아 물살에 마음 실어보냈던 날도 있었다 혹은 불면의 밤이나 바람이 불어 부유하던 청춘의 날 나는 너를 결핍이라 말했다 한때는 숲에도 산새가 깃들고 차가운 강물도 생명을 품고 흐른다 말했다 긴 부정의 세월 이제야 너를 있는 그대로 바라다본다 고독, 나의 오랜 친구여 더보기 부복(俯伏)의 생 세상 가장 낮은 엎드림이여 부활의 아침보다 죽음의 새벽길을 향한 여정 그저 생의 찬란함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 세상의 낮은 소리에 귀 기울여 우는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비울수록 울리는 종소리처럼 낮아질수록 높아지는 신비를 깨달은 그래서 자초한 순명(順命) 평생을 엎드러질 부복(俯伏)의 생이다. 2018. 05. 17 김두승, 남우희 졸업생의 부제서품을 축하하며.. 더보기 삼순이의 성수 큰 아이 기저귀 삶던 삼순이 여러 번 이사에 버릴법도 하건만 베란다 선반은 항상 너의 집이었다. 이곳에 빨래 대신 그릇을 넣고 베이킹파우더를 뿌리면 묵은 기름때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벗겨져버린다. 때묵은 내죄도 네게 바치면 요단강의 세례처럼 깨끗해질 수 있을까새로 산듯 반짝이는 스뎅 냄비들 매주 반복되는 죄의 고백 삶은 항상 검게 그을리거나 얼룩져있다. 더보기 순교자(복자)를 기념하는 기억의 넓이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그의 존재, 예산은 그의 첫 부임지였다. 1943년 4월 일제에 의해 예산교회는 폐쇄되고 유치원은 몰수된다. 그는 예산을 떠나 인천으로 갔다. 인천성당에 머물면서도 늘 예산교회가 마음에 걸렸나보다. 예산교회 출신으로서 성공회 사제가 된 유명희 사제에 의하면 "조 신부는 예산교회를 떠나 인천성당에 있으면서 예산교회 소식을 들으니, 당시 예산교회의 부지가 꽤 컸는데 일본인 군수가 교회 부지 일부까지 군수 사택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심상영 사모의 말씀에 몇 일을 고민하다가 내려갔다와야겠다고 하며 비장한 다짐과 함께 예산에 내려와 군수와 담판을 지어 당시 교회 부지를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고 심상영 사모의 전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 강직한 신앙은 결국 6.25 동란때 피난을 가지..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