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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1917/예산교회 재건일지

2017/09/01 신대원 원정대, 예산에 가다

신대원은 금요일 아침 감사성찬례를 제외하고는 수업이 없는 날입니다. 

주말은 교회일로 다들 바쁘니 아침 감사성찬례를 마치고 예산교회로 향했습니다.

함께 동행한 원우는 박용성 하임(부산교구.2학년), 김두승 아모스 (서울교구, 3학년) 원우입니다.

이 두 신학생의 공통점은 호기심 대마왕이라는 것입니다. 

살짝 나들이 느낌에 들뜬 신학생들을 태우고 예산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날은 전날 윤덕님과 통화하여 열쇠안내를 받았기에 성당과 유치원 실내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예산교회를 둘러보는 신학생들

 

 

 

비밀의 문을 여는 신학생들

 

 

 

 

예산교회에서 사용하던 장의자들과 집기들 성물들은 다른 성공회 교회가 가져갔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교회라 장의자는 필요없지만 교회를 다시 시작한다면 가구들과 성물들은 꼭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천장은 나무로 되어 있고 바닥은 오래된 카펫인데 입니다.

창문의 방향은 빛이 제대를 향하게 건축되었습니다.

70년대 건축이지만 제법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캘틱 고상십자가와 제대입니다. 

제가 이제껏 본 제대중에서 가장 심플하고 아름다운 나무 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는 가져가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라죽은 화분이 마치 예산교회 같아 보였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자 피아노의 성능은 확인을 못하겠네요.

 

정말 오래된 앰프입니다. 실사용보다는 골동품으로서 더 가치가 있어보입니다.

스피커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스피커도 떼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제단 바닥은 나무로 제작되었고 붉은 카펫을 깔았습니다.

제단 벽면은 데코나무인것 같은데 너무 어두운 느낌이 들더군요.

차라리 핸디코트로 마감하는게 더 깔끔했을텐데...

 

 

 

성당입구에 붙여놓은 성공회 신문입니다.

2016년 성탄절이 마지막 성탄절이었던 셈이네요.  

 

 

성당입구를 나오는 박용성 신학생의 얼굴이 제법 진지하네요.

성당 현관문은 제법 튼튼해보입니다.

 

 

 

옆 건물인 신명유치원 건물입니다.

복도를 기준으로 우측으로 큰 방이 2개 있습니다.

 

집기들이 모두 그대로인 채로 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곳도 신축된지 20년이 넘은 건물입니다.

 

 

 

집기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해보게 됩니다.

필요한 교회들이 있다면 그곳에 보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방은 성당과 연결되어 있는 방인데 구조상 많이 습하더군요.

유치원 건물을 철거한다면 이 공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쓰던 화장실입니다. 모든 것이 작고 앙증맞네요.

 

 

유치원 건물은 20여년 전에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정면만 벽돌로 장식을 했습니다. 천정을 석고보드로 마감한지라 철거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 뒤로 2층에 올린 건물이 사제관입니다.

 

 

아이들이 놀던 놀이터입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미끄럼틀이 외롭게 서 있네요.

유치원 건물을 철거하면 마당이 넓어져 정원과 주차장으로도 사용이 가능해보입니다.

 

 

 

성당 대각선에는 예산군 여성회관이 보입니다.

그뒤로 보이는 십자가는 예산 제일교회입니다.

예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머니교회라는데 1916년 부터 모임을 가졌다고 하네요.

예산교회는 공식적으로 1917년에 건물을 축성했고 그전에 이미 오천리와 공전리에도

1911년 부터 모임을 가진것으로 나오는데....

누가 먼저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린 문 닫았잖아요.

 

 

왼쪽 건물 끝에있는 건물이 무한정보 신문사입니다.

예산지역 신문사로서 역사도 있고 양질의 기사도 많이 내는 신문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산지역 상황에 대해 장선애 기자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당에서 500미터 거리에 공무원 아파트가 신축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입지조건이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아까운 곳에 이웃종교인 통일교가 있네요.

그 밑에는 바로 안식교회가 붙어 있습니다.

성공회를 비롯하여 소수종파들은 이 골목에 다 몰려있는 것 같습니다.^^

 

 

성당 바로 아래에는 구 예산군청입니다.

그러니까 예산교회는 성당 바로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죠.

신청사는 여기에서 1키로도 안되는 곳(공무원 아파트 앞)에 신축되어 있습니다. 

 

 

예산읍내는 한낮에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편이더군요.

주말은 상황이 좀 다를지 모르겠네요.

 

 

 

- 이날 예산교회의 액자 사진 2장과 신명유치원 앨범 두 권, 석면검사의뢰 결과서, 기타 신명유치원 자료 일부를 챙겨옴

  이날 챙긴 예산교회 사진은 아래와 같음.  

 

 

 

 위 사진이 정확하게 몇년도 사진인지는 알수가 없음. 다만 약사의 기록과 성당의 구조로 보아 초기건물로 추측된다.

그 이유로는 약사에 기술된 바 "임성면 예산리 136번지에 3간 초막을 사들여 목회의 기틀을 마련했다."라고 나온다. 

 "이후 19255월에 예산읍 466번지에 큰 집을 매입하고 71일에 성바우로 성당으로 축복하였다." 라고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위 건물이 1917년에 매입한 건물로 추정된다.

 

또한 사진에 어린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신명유치원의 정식인가는 1925년이지만 1917년부터 학교를 운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다음의 약사에 기인한다.

"예산교회의 부속기관인 신명유치원은 1917년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1928년에 인가가 되었다."

 

 

 

                 

 

이 사진도 교회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진중에 한장이다.

1963년이라고 나오는데 이 시기에는 인근의 장로교회가 교회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신명유치원도 대리 운영하였다고 한다.

일제와 한국전쟁으로 복구하진 못한 유치원을 대신해 운영을 해주었으니

어찌보면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그 교회는 지금 엄청 큰 장로교회가 되어 있다.

한 동네 사는 시골의 인심이 박해선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