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 썸네일형 리스트형 예산교회 출신 유명희 사제와의 만남 날짜: 2018. 06.10 장소: 성공회 부산교구 기장교회 예산교회의 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시 관할사제였던 박승시 신부님은 작고하셨고 신자들도 흩어졌습니다. 70년대는 예산교회가 재건을 하고 새롭게 성당을 신축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상황을 잘 파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유명희 신부님은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 교회를 왔다가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70년대 후반 중, 고등학교 시절의 학생회 기억과 80년대 초반 미카엘신학원 재학 시절 예산교회에서의 사진 자료들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65년 신명유치원 졸업앨범도 받았습니다. 주로 사진 설명과 더불어 교회 상황을 들었는지라 추후에 상세하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사진.. 더보기 1965년 신명유치원 졸업앨범 예산교회 출신 성공회 사제가 되신 유명희 신부님께 받아온 신명유치원 졸업앨범이다. 현재까지 수집한 졸업앨범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앨범이다. 당시 졸업앨범으로서는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앨범이다. 사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 장마다 기름종이 재질의 간지를 삽입하였다. 졸업앨범의 뒷 편에 있는 활동사진들은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65년 졸업앨범을 살펴보도록 하자. 65년 졸업앨범이니 사진자료들은 63년도나 64년도에 찍은 사진일 것이다. 65년이 35회이니 34번의 졸업생이 있다는 것인데... 각 장마다 자료의 보존을 위한 간지처리를 이렇게 해놓았다. 메인사진은 유일하게 60년대 기법으로 칼라사진으로 처리되어있다. 이때는 성공회 교인이 아닌 분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사진 위쪽 왼편.. 더보기 1982~1988년 우덕기 마가 관할사제 1980년대는 지금은 은퇴하신 우덕기 마가 신부님이 관할사제로 계셨던 시기이다. 1982년 10월 부터 1988년 2월까지 계셨으니 횟수로는 7년간 시무하셨던 셈이다. 1968년 재건을 하고 1976년에 성당이 신축되면서 예산교회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우덕기 신부님을 기억하는 신자들도 있다. 이 시기의 기록은 우덕기 사제 은퇴자료집에 35페이지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6월달에 상세한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더보기 역사자료관 소식지 5월호에 소개된 예산교회 성공회 역사자료관 2018년 5월호(43호)에 예산교회가 실렸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예산교회 자료들을 찾아 역사자료관을 드나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예산교회에 관심을 갖고 격려와 지원을 해주신 박정숙 모니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보기 무한정보신문사에서 보내준 사진 작년 유치원 폐원되었을때 보도했던 지역신문사(무한정보)에 났던 사진이다. 이 사진의 출처를 몰라 신문사에 의뢰해 스캔본을 받았다. 신명유치원은 60년대로 보이며 1930년대 신축했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다. 저 건물을 잘 보존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아래 사진은 75년 성당을 새롭게 신축하고 나서 찍은 사진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신명유치원도 콘크리트조로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성당 전면의 지붕은 약간의 멋을 주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곡선인 부분을 잘라내고 조립식 사제관 건물이 올라가 있다. 사진 원본은 성당에서 제공했다는데 이 사진은 성당에 없다. 수소문 해보아야 겠다. 60년대 신명유치원의 전경 70년대의 성당과 신명유치원 더보기 역사자료관에서 찾은 몇 장의 사진(소일, 신석리, 예산교회) 예산 소일기도소소일기도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이 마을 전경 사진이 전부이다. 소일리를 검색했으나 나오지 않는다. 좀더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신석리 교회터 복식으로 보아 아마 70년대가 아닐까 싶다. 신석리교회에 대한 정보 역시 빈약하다. 1930년대 신석리 교회 단체사진 이 사진의 원본이 궁금했는데 역사자료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조용호 신부님의 사목기록이 존재한다면 좋겠는데 아쉽기 그지 없다. 예산성당 축복식 현재의 성당을 짓기 전에 기존 한옥성당을 수리하고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노대영 주교님의 모습이 보인다. 자료관에서 보내준 위 사진들의 스캔품질이 안좋아 다시 방문해야 할 것 같다.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더보기 예산교회 재건의 숨은 주인공 소영필 부제(1969년 5월 자 성공회신문) 소영필 신부님이 부제 시절에 재건을 준비하셨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위의 기사 "충남에 전도 지역 넓혀"라는 기사의 '예산교회'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편 아산군과 인접하고 있는 예산교회는 1917년부터 1943년 4월까지 여러가지로 발전하던 곳으로 이제까지는 아무런 목회활동이 없었으나 현재 소 아타나시오 부제를 예산의 교회집에 거주시키면서 군소재지를 중심으로 목회사업을 펴나가고 있다. 예산성당도 역시 성 안드레아 성당인데, 이 두 교회의 전도 사업은 두 교회를 다시 살릴뿐만아니라 충청도에 있는 전데 성공회에도 관련되는 일이라고 본다." (성공회 신문 1969년 5월자 4면) 68년에 재건을 시작했다고 약사에 나와 있고, 위와 같은 활동이 69년 5월 자 기사에 나왔으니 .. 더보기 초대 시무 성직자 구건조(바나바)사제 구건조 신부는 1917년 9월에 사제서품을 받고, 수원교회에서 보좌사제로 일하면서 예산교회에도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예산교회 약사에는 "같은 해 11월에 구건조 바나바 신부에 의해 여섯 명의 교인이 망세를 받았다"라고 나와있다. 또한 1925년 천안 부대동교회 관할사제를 맡을 때 예산에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산교회 약사에도 1925년 "이 당시에는 사제는 거의 상주하지 않고 부대동교회의 사제가 출장하여 성사를 집전했다"라고 나와 있다. 따라서 구건조 신부는 예산교회의 처음 세례를 준 사제이자 20년대에는 출장 사제였던 셈이기도 하다. 구건조(바나바)사제 (1866-1932) 성공회 사제(司祭) 구건조(具建祖, Barnabas Kou)는1914년 6월 7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김희준(마가)과 함..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