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 썸네일형 리스트형 '예산근대문화조사서'에 나오는 예산교회 예산군은 2017년 5.18일부터 12월 13일까지 6개월간 '예산근대문화유산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조사의 시대적 범위는 1876년부터 1983년까지 이며 예산군 일원에 산재한 건물들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ㅇ예산군 일원에 산재한 다양한 근대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 · 수집 · 정리하여 근대문화유산 종합관리대책 기반을 마련하고, 보존· 관리 및 활용방안을 제안함. 조사의 내용적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예산군 근대문화유산 일제조사 및 기록 - 근 현대기에 조성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 시설물의 발굴 및 수집, 정리 ○ 예산군 근대문화유산 보존 관리 및 활용 방안 제시 - 근대문화유산 유형별 활용계획 제안 - 기타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정책 제언 이.. 더보기 신명유치원의 전신 '성공회 강습소'('예산교육사'에서) 예산교육사에 나오는 신명유치원에 대한 자료입니다. 기록(총독부 관보, 10월 15일)에 의하면 1917년에 성공회가 가장 먼저 시작한 사회선교 사업은 강습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공립이 부족한 시대이다보니 선교계 사학들이 야학이나 강습소등을 설립하여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나옵니다. 성공회 역시 '성공회 강습소'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훗날 신명유치원으로 발전하여 1928년에 정식으로 유치원 인가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신명유치원의 전신인 성공회 강습소까지 유아교육의 역사를 생각하면 성당의 역사와 동일해집니다. 강습소에서 유치원 인가까지의 상황을 알수있다면 좋겠는데 총독부 자료를 찾아봐야겠습니다. 더보기 예산교회 초대 전도사 김만준(바우로)의 기록 예산교회는 1917년 김만준 전도사의 전도로 시작되었다고 편람에 나옵니다. 총독부 자료에는 1917년 10월에 이미 성공회가 성공회 강습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그 이전부터 예배나 전도 모임을 가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식적인 기록은 "임성면 예산리 136번지에 3간 초막을 사들여 목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같은 해 11월에 구건조 바나바 신부에 의해 여섯 명의 교인이 망세를 받았다."다고 나옵니다. 김만준 전도사의 기록을 찾아보았는데 그의 기록은 '대한성공회 100년사'에 2번만 나옵니다. 그의 형이었던 김희준 사제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지라 자료와 사진이 많이 있지만, 평신도 전도사나 전도부인들의 자료들은 이처럼 기록이 빈약합니다. 김만준 전도사는 주로 수원과 천안전도구에서 활.. 더보기 '모닝캄'(Morning Calm)에 소개된 예산성당 축성일 사진 1976년 10월 1일 예산성당은 성마가(마르코)성당으로 축성되었습니다. 이때 유치원 건물도 함께 새롭게 신축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발행된 한국선교소식지였던 모닝캄(Morning Calm)에도 예산성당 축성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축성일 당일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축성 이후의 전체 전경 더보기 1930년 신명유치원 기사(매일신보) 1932년 12월 06일 완공된 신명유치원 전경(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 禮山初有의 音樂大會 : 수입은 신명유치원의 경비로 보조 예산 신명유치원 학부모회에서는 지난 팔일 오전 칠시에 예산 공립보통 학교 대강당에서 음악대회를 개최하얐는데 이화여전 교수 安基英씨, 중앙보육 학교 음악주임 洪蘭坡씨의 출연과 유치원 아동창가 십종과 예산자유악단 일동의 바이올린 합주와 예산청년 일동의 하모니카합주로 예산초유의 음악회로 대성황을 정(呈)하였는데 수입은 경비를 제하고는 전부 동유치원 경비의 보조에 충용하엿다. -매일신보 1930년 2월 14일 3면 기사|- [특별기고―신도성] 교회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기사입력 : 2004.08.17, 15:18 광복 59주년인 올해 8월은 한국 교회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 선생이.. 더보기 1965년 신명유치원 보육증서와 상장 9월 25일 유명희 신부님이 1965년 신명유치원 보육증서와 상장을 사진 파일로 보내오셨다. 당시 유치원은 2년 과정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원본을 부탁드려야겠다. 작은 기록이지만 작은 기록들을 모으면 하나의 역사가 된다. 더보기 예산교회 초대 전도부인 '김동식 에스더' 금주 주일은 대한성공회에서 지정한 '여성선교주일'이었습니다. 대한성공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도부인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분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특히 일제에 의해 선교사 추방령이 내려지고, 또한 한국전쟁 이후 복구되지 못한 많은 교회를 지킨 것은 다름아닌 여성들이었습니다. 아래 소개된 신문자료는 유명희 신부님이 신학생시절 인터뷰한 내용으로서 예산교회 초기 역사와도 관련있는 한 전도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남양주교회의 남우희 부제가 이 이야기를 토대로 주일설교를 하였기에 주보 글을 원문 그대로 올려봅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한 그분들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8년 9월 2일 (연중 22주일/ 여성선교주일) 설교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여성들의 헌신과 수고를 통하여 대한성공회를 오늘날까지 돌보아주셨.. 더보기 84년, 그 해 겨울 84년 예산교회 학생회에 4명의 신입생이 입학했다. 아마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신입생인 것으로 보인다. 종이 현수막과 종이왕관을 만들어 환영했던 학생회. 교사였던 유명희 신부님이 60이 다 되셨으니 이들도 모두 나처럼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같은 성당에서 다른 시간대의 아이들을 바라보자니 기분이 묘하다. 지나간 시절을 더듬으면 아련함이 스며온다.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