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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교회 재건의 숨은 주인공 소영필 부제(1969년 5월 자 성공회신문) 소영필 신부님이 부제 시절에 재건을 준비하셨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위의 기사 "충남에 전도 지역 넓혀"라는 기사의 '예산교회'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편 아산군과 인접하고 있는 예산교회는 1917년부터 1943년 4월까지 여러가지로 발전하던 곳으로 이제까지는 아무런 목회활동이 없었으나 현재 소 아타나시오 부제를 예산의 교회집에 거주시키면서 군소재지를 중심으로 목회사업을 펴나가고 있다. 예산성당도 역시 성 안드레아 성당인데, 이 두 교회의 전도 사업은 두 교회를 다시 살릴뿐만아니라 충청도에 있는 전데 성공회에도 관련되는 일이라고 본다." (성공회 신문 1969년 5월자 4면) 68년에 재건을 시작했다고 약사에 나와 있고, 위와 같은 활동이 69년 5월 자 기사에 나왔으니 .. 더보기
2017/09/07 신대원에서 예산교회를 논하다. 신대원 공동체 회의에서 예산교회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심규용 안토니오(대전교구) 신학생이 예산교회 답사 사진과 예산교회 다시 살리기 프로젝트 안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신학생들이 매각 위기에 처한 예산교회의 상황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또한 신학생으로서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날 회의에 동석한 양권석 신학대학원장님은 우선 예산교회를 방문, 그곳에서 저녁 만도를 드리며 예산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산교회에서 저녁기도회를 차후에 갖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더보기
초대 시무 성직자 구건조(바나바)사제 구건조 신부는 1917년 9월에 사제서품을 받고, 수원교회에서 보좌사제로 일하면서 예산교회에도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예산교회 약사에는 "같은 해 11월에 구건조 바나바 신부에 의해 여섯 명의 교인이 망세를 받았다"라고 나와있다. 또한 1925년 천안 부대동교회 관할사제를 맡을 때 예산에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산교회 약사에도 1925년 "이 당시에는 사제는 거의 상주하지 않고 부대동교회의 사제가 출장하여 성사를 집전했다"라고 나와 있다. 따라서 구건조 신부는 예산교회의 처음 세례를 준 사제이자 20년대에는 출장 사제였던 셈이기도 하다. 구건조(바나바)사제 (1866-1932) 성공회 사제(司祭) 구건조(具建祖, Barnabas Kou)는1914년 6월 7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김희준(마가)과 함.. 더보기
2017/09/01 신대원 원정대, 예산에 가다 신대원은 금요일 아침 감사성찬례를 제외하고는 수업이 없는 날입니다. 주말은 교회일로 다들 바쁘니 아침 감사성찬례를 마치고 예산교회로 향했습니다. 함께 동행한 원우는 박용성 하임(부산교구.2학년), 김두승 아모스 (서울교구, 3학년) 원우입니다. 이 두 신학생의 공통점은 호기심 대마왕이라는 것입니다. 살짝 나들이 느낌에 들뜬 신학생들을 태우고 예산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날은 전날 윤덕님과 통화하여 열쇠안내를 받았기에 성당과 유치원 실내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예산교회를 둘러보는 신학생들 비밀의 문을 여는 신학생들 예산교회에서 사용하던 장의자들과 집기들 성물들은 다른 성공회 교회가 가져갔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교회라 장의자는 필요없지만 교회를 다시 시작한다면 가구들과 성물들은 꼭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보기
2017/08/26 "예산교회는 신부님들의 실습장소예요." 대전교구 어머니연합회 수련회가 있던 날, 교회 어머니들을 모시고 청주 수동교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교무국장님과 예산교회를 거쳐갔던 사제분들께서 계셨던 지라 일련의 과정들과 주교님의 의견을 전달하였습니다. 모두 예산교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였고, 신대원에 대한 기대감 또한 표명하였습니다. 교회의 상황을 알기 위해 예산교회의 신자였던 분들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분들과 통화를 하면서 예산교회의 최근 몇년 간의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원장이었던 비비안나님은 예산교회를 떠나 인근 카톨릭 성당에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유치원의 폐원으로 마음에 트라우마가 생겨 지금도 신명유치원 근처에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끄럽고 그저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예산교회의 쇠락의 원인으로 신부님들의 잦은 .. 더보기
교구편람에 나오는 예산교회 약사 더보기
2017/08/25 원우들에게 기대어 서서 예산교회를 보고 돌아면서 예산교회의 상황과 짧은 기도문을 대전주교좌 단체카톡방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예산교회를 신학대학원 원우회가 위탁 운영하면 어떨까 견해를 올렸습니다. 학생들이 힘은 없지만 창조적인 아이디어에 기대보면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이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주교님이 그 글을 보시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신대원 원우회가 운영한다면 예산교회 매각을 잠시 보류할수도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원우회에서 정식으로 결정된것도 아닌지라 회의를 통해서 알려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예산교회 재건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성직과정 원우회 더보기
예산 신석리 성모니카 교회 1930년대 예산 신석리 성모니카 교회(사진출처: 충남민속사진집 2) 1930년대 예산지역에 성공회 교회가 하나 더 늘었다. 신석리 성 모니카 교회가 언제 생겼다가 사라졌는지는 현재 기록이 없다. 현재 알려진 기록은 이 사진 하나만 있는데 이 역시 성공회의 기록이 아닌 충남민속사진자료집에 수록된 사진이다. 사진 중앙에 사제로 보이는 신부는 조용호 신부의 모습으로 추측된다. 아마 30년대에 예산교회에 시무하면서 신석리 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의 출처를 해당 기관과 성공회대 역사자료관에 문의해봐야 할 것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