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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생태적 교회가 된 예산교회(?) 2017년 8월 24일 대학원 2학기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올해 폐쇄된 예산교회에 사진이라도 찍어놔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산교회는 현재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주임사제인 김현근 신부님의 첫 부임지였습니다. 올해 2월로 임시폐쇄가 결정된 것을 안타까와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예산이란 도시는 제게는 그리 낯선 곳이 아닙니다. 집사람의 고향이 합덕이고 이곳을 가려면 예산 당진간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항상 예산을 거쳐서 가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10년 가까이 예산을 거쳐서 처갓집에 다녀왔습니다. 조그만 소도시이지만, 오랜 역사성을 간직한 아담한 도시로 기억합니다. 예산에 진입해서 교회를 가기까지 큰 개신교 교회들을 지나쳐왔습니다. 개신교 교회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 더보기
성공회 예산교회 잠정 폐쇄 기사 (2017년 3월 13일자) 100주년 맞은 성공회예산교회, 잠정폐쇄 안타까운 지역사... 충남 예산군내 최초 신명유치원 90년 역사도 마감 17.03.13 18:18l최종 업데이트 17.03.13 18:18 장선애(wkdtjsdo) ▲ 초창기 신명유치원 모습. ⓒ 신명유치원 관련사진보기 대한성공회 예산교회(충남 예산군)가 설립 100주년을 맞는 올해 잠정폐쇄에 들어가 또 하나의 안타까운 지역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1927년 충남 예산군내 최초로 문을 열어 90년 동안 유아교육에 이바지해온 신명유치원도 3월 7일자로 폐원이 결정됐다. 예산교회를 관할하는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관계자는 "예산지역에 신자가 없어 올해 사제를 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폐쇄가 완전결정된 것은 아니다. 잠정폐쇄로 보는 게 맞다"면서도 "내포신도시나 .. 더보기
'충남민속사진집'의 성공회 역사와 예산성당/신명유치원 사진으로 보는 충남의 민속생활상 '충남민속사진집' 사진집으로는 첫 시도 2012.05.04(금) 14:41:00 | 충청남도 ( chungnamdo@korea.kr) 충청남도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변평섭)은 ‘2010 충남민속문화의 해’를 기념하여 충남 지역의 근·현대 민속신앙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자료를 모은 『충남민속사진집』(전3권)을 발간하였다. 이 사진집은 공모와 수집을 통해 각 기관과 단체, 개인 등으로부터 수집한 10,000여 장의 사진 가운데 1,394장을 선별하여 묶은 것이다. 충남의 민속생활상 전반을 사진으로 기록화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으며, 충청남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다 쉽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권으로 구성된 사진집은 1권에는 가정과 마.. 더보기
1976년 예산성당 신축(성공회 신문 10월 25일자) 기사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예산성당 축성식 거행 70평의 현대식 성당 건물 예산교회(관할 박승시)신부의 신축 성당축성식이 지난 10월 1일 오후 2시,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 예산지방의 각교파대표및 기관장 등 200여명의 내외축하객이 모인 가운데 대전교구장 배두환주교 집전으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작년 10월에 착공하여 금년 봄에 공사를 대략 끝내고 그동안 내장공사와 유치워건물의 보수등 작업을 끝내고 이번에 축성된 예산성당은 700평의 대지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현대식건물로서 45평의 성당과 25평의 사제관이 연결되어 잇다. 예산교회는 1917년 전도가 시작되어 1943년 왜정에 의해 강제폐쇄, 공백기를 지나 1968편 목회가 다시 시작되는 등 많은 역경을 거치다가 이번에 아름다운 성당을 마련하게되었는데.. 더보기
70년대의 예산성당 교인들 예산성당앞에서 초대 관할사제인 박승시 사제와 이행자 사모(맨 좌측) 신명유치원 앞에서 박승시 사제와 교인들 신명유치원 앞에서 유치원 자모들과 함께 1976년 5월 예산교회 예산교회를 방문한 노정빈 선교사와 함께 (뒷줄 남성은 임태섭 전도사) 식사시간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교인 더보기
1963년 신명유치원 졸업식 1963년 신명유치원 34회 졸업식(출처: 예산교회 소장자료) 이 시기 신명유치원은 성공회가 아닌 다른 교파가 유치원을 운영하였다. . 더보기
1968년 성당 재건 1968년 폐허가 된 성당을 다시 복구하여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1969년 초대 관할사제로 박승시 사제가 부임하였다. 새로 마련된 기도실(성공회 월보 1971년 11월 26일)사진출처: 대한성공회 역사자료관 다시 복구된 예산성당. 유치원 생들의 방문(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 복구된 성당의 모습, 합각 아래와 정문 옆에 십자가 장식을 추가하였다. (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 축복식에 참석한 교인들(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 더보기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되어 전쟁 후 황폐화된 예산성당 예산교회는 1943년 4월 일제의 의해 폐쇄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본격화 됨에 따라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영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일제는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을 강제 추방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대한성공회의 모든 영국인 선교사들도 1942, 43년을 전후로 모두 추방되었다. 따라서 한인 사제들은 지방을 떠나 서울과 경기도 주요 성당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예산성당의 시무사제였던 조용호 사제도 예산을 떠나 인천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인천성당에 있으면서도 예산교회의 소식을 들으니 당시 예산교회의 부지가 꽤 컸는데 일본인 군수가 교회 부지 일부까지 군수 사택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심상영 사모의 말씀에 몇 일을 고민하다가 내려갔다와야겠다고 하시며 비장한 다짐과 함께 예산에 내려와 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