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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약함의 신학

포천에서 온 편지, 'One Bread Church'

 

 

 

사목자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눈동자를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측은한' 눈빛으로 가난한 이들을 응시하셨던 보셨던 주님의 눈빛은 한없는 연민이었습니다. 

학교 시절, 한 방을 쓰며 밤마다 투지를 불태우던 김두승 신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부제님이 되어 멀리 포천 나눔의 집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최근 난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가운데, 이미 우리들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그네들을 생각해보게됩니다. 

그의 시선과 계획위에 선하신 하느님의 축복을 기도합니다.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히브리서 13:2)

 

 

 

 

 

 

 

                                                     'One Bread Church'를 꿈꾸며

 

 

김두승 아모스

 

저는 가끔씩 포천지역에 산재해 있는 공장을 찾아가 업주들을 만납니다. 동남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친절하게 해 달라, 급여 잘 챙겨 달라, 근로계약서 잘 써 달라 등의 사업주 교육을 빙자한 부탁을 하러 다닙니다. 그러다가 신평지역에 위치한 공단에 들렀습니다. 이날은 포천나눔의집에서 실습 중이던 정아름 요한 전도사님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그곳엔 제가 그동안 많이 만나오지 못했던 아프리카 출신의 이주민들이 작은 슈퍼마켓 앞 파라솔 그늘 아래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위 아래로 까만 옷과 클러지 셔츠를 입고 있는 저를 보고 이분들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Are you priest?" 아직 부제이지만, 영어로 성직의 호칭이 저마다 다르고 부제라고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지라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떨결에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저의 짧은 영어에도 끝끝마다 "Amen"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였습니다. 슈퍼 앞 길거리인지라 지나가는 행인이 볼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 저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성공회 교회 소속의 사목자입니다.’ 이들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나이지리아 출신의 난민들이었고, 대부분 나이지리아 성공회 출신의 이주난민이었습니다. 제가 포천에서 처음 만난 난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저는 신평공단을 방문하는 횟수를 조금 늘렸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그들은 저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던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간이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왜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들은 이곳 작은 슈퍼마켓 파라솔 밑에 모여 있을까?’ 2018년 지금은 이주노동자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주민실업자의 시대입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들어오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적어도 비자 기한까지는 보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난민들의 경우는 그 체류가 적법하더라도 일을 구하거나 생활하는 모든 것에는 스스로 해야만 합니다. 언어도, 직업도, 생활도 모든 부분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죠셉이라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난민이 제가 있는 이주민지원센터에 찾아왔습니다. 일용직 건설노동으로 전국을 전전하다가 그만 오른쪽 손가락을 다치고, 치료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로 건설현장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는 짓눌려져서 상한 손가락을 저에게 보이며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난민이라는 것, 혹여나 출입국관리소에서 잡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보험도 되지 않아서 비싼 병원비 등의 이유로 쉽사리 병원에 못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를 안심시키고, 병원으로 함께 동행 했습니다. 접수부터 진료에서의 통역까지 함께 했습니다. 나눔의집이 희망의 친구들이라는 이주민의료공제회를 통해서 의료비도 절감하였습니다. 죠셉은 크게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제가 이주민지원센터에서 사목을 하면서 언제나 동남아 출신의 이주민들에게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그 동안 난민을 향한 관심과 지원은 이주노동자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죠셉을 신평공단에 위치한 원룸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죠셉의 방은 반지하의 습하고 좁고 어두운 방이었습니다. 이 작은 방에서 세 명의 난민이 모여 산다고 했습니다. 방구석에 쌓여있는 PT병 소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취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난민의 삶, 이주민의 삶, 이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삶이었습니다. 죠셉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만났습니다.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보니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 마태오 20, 1,3,5

 

이들은 자신들은 젊고, 아직 열정도 넘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할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할 일이 없어 장터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고, 포도원 주인의 초대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이들에게 자비로운 포도원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누가 이들에게 할 일 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일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이주민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렇게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우리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의 삶을 사랑하여 주소서. 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마련해 주소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 주소서.’ 기도의 끝에 다다른 바는 이들의 삶을 온전히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여름은 너무 더웠습니다. 태양의 땅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도 한국의 여름에 맥을 못 추고 힘들어했습니다. 신평공단의 작은 슈퍼마켓 앞 파라솔 밑에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은 원룸촌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었습니다. 저는 나눔의집 창고에 잔뜩 쌓여있는 선풍기를 꺼내어 물로 닦았습니다. 그리고 신평공단 그 작은 슈퍼마켓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나누었습니다.

 

저는 다시 신평공단을 찾았습니다.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모여서 기도를 하는지, 영어로 예배를 드릴 곳이 있는지말입니다. 없다고 했습니다. 의식주의 모든 영역, 그리고 신앙의 자유까지도 뺏긴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어예배를 원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나눔의집 이주민지원센터에서 이들을 위한 영어예배를 준비하고, 주중의 이주민지원센터 한국어, 노동상담, 의료지원상담, 생활상담의 일에 이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한 달간의 시간을 두었습니다. 우선 영어로 된 예식문을 마련해야 했고, 나이지리아 및 다른 아프리카의 신앙의 풍토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우선 대한성공회의 신학적 기반과는 달리, 열정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또한 사목자의 권위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매번 방문할 때마다 저에게 기도를 요청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선 저는 사목자의 권위를 없애고, 모두 한 형제로 지내기를 서로 약속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호칭은 'Brother'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식문은 영국성공회의 저녁기도를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별도로 영어 설교와 축복기도문은 첨가하여 넣었습니다. 이들이 축복기도를 통해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삶에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면 전례를 통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한 달간의 준비를 끝내고, 2018729일 연중 17주일 오후 3, 포천나눔의집에서 첫 영어기도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여자는 죠셉과 프린스 그리고 저였습니다. 이들은 이 무더운 여름날씨를 뚫고 20분간 버스를 타고 교회로 모여 주었습니다. “Our Father God is always waiting for you. and We welcome we gathered name of The church." 기도모임을 마치고, 빵과 과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오 18: 19-20"

 

그리고 프린스가 저에게 필요하다고 하던 다리미와 커피포트를 나누었습니다. 다리미가 필요한 이유는, 교회에 가야 하는데 다려진 셔츠가 없어서 너무 망설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다리미를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안 쓰는 다리미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컵라면을 먹으려면 커피포트가 있어야 하는데, 매번 친구네 집에 가서 물을 끓여 온다는 것입니다. 제게 있는 커피포트를 다비타 여사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다 나누었습니다.

 

"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루가 3, 11

 

주중에 일을 찾기 위해 직업소개소에게 끝없이 문자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정말이지 이주실업자 시대입니다. 그러던 중 포천경찰서 외사계 형사님이 저를 찾아와주었습니다. 최근 제주도 예멘 난민에 관한 의견을 묻고, 또 포천에 있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난민에게 필요한 지원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일자리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외사계 형사님이 할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포천 곳곳의 공장이나 농장을 많이 알고 있으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의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힘을 보태주기로 하였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나눔의집은 더욱 안정적인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무엇보다 한국어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눔의집이 운영 중인 무료 한국어 교실에 참여하기를 권했습니다.

 

교회라고 하여서, 기도만하고 성경말씀만 배운다면 그것은 교회에 대한 오해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자신의 온전한 삶을 회복시키는 곳입니다. 자기 삶의 이유를 되찾는 곳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축복을 서로 나누며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은 “One Bread Church"입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 버려졌지만 주님은 이들을 불러 멋진 공동체로 세우실 것을 신뢰합니다.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디다케 9. 14-15

 

그동안 가난과 편견으로 인해 흩어졌던 형제들이 한 덩이의 빵으로 뭉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쪼개져서 이곳의 더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돌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