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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캄'(Morning Calm)에 소개된 예산성당 축성일 사진 1976년 10월 1일 예산성당은 성마가(마르코)성당으로 축성되었습니다. 이때 유치원 건물도 함께 새롭게 신축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발행된 한국선교소식지였던 모닝캄(Morning Calm)에도 예산성당 축성 사진이 실려있습니다. 축성일 당일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축성 이후의 전체 전경 더보기
2018/10/09 바베큐 파티와 어떤 평화운동가의 특강 10월 9일 '마르코의 책방' 모임에서는 바베큐파티와 특강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부터 뒷마당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바베큐 파티를...멀리서 차를 대고 오신분의 전언에 의하면 고기 굽는 냄새가 동네에 진동을 했다는...^^이날 대전에서 김상준 사무엘 청년이 고기를 제공해주었고, 김마리아님이 각종 양채와 쌈장과 어마무시한 사과 궤짝을 가져오셨고, 승선희 페루페투아님이 밥과 귤을 제공해주셨습니다. 박효신 대흥슬로시티 국장님과 김기선 선생님과 지인, 채창완 신학생과 박용성 신학생이 함께 했습니다. 아 그리고 승선희님의 자녀인 지연이와 병연이가 함께 했습니다. 파티가 끝나고 교제에 있는 '성공회의 사회정의 정신'에 대해 읽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의 입장.. 더보기
2018/10/08 바베큐 파티를 위한 그릴 구입 예산성당의 가장 큰 장점은 뒷 마당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과거 신명유치원 텃밭으로도 이용했다고 하는데 이제 각종 파티와 작은 음악회, 노천카페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바베큐 파티를 위해 그릴을 샀다. 한번 사면 10년은 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수입업체의 카피가 어찌 그리 달콤하던지 오래 사용할거면 좋은 것을 사는게 진리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머리가 나빠 조립은 조금 힘들었지만 끙끙거리며 조립하고 보니 제접 간지가 난다. 이제 애찬은 바베큐로...ㅎ 더보기
"달려요. 조세핀!" 자신의 필요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갔던 그녀는 지금도 천국에서 운전대를 잡고 계실 것이다. 노정빈 선교사님은 영국성공회 어머니연합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60년대와 70년대 대전교구 선교에 많은 기여를 하고 가신 분입니다. 대한성공회 60~70년대의 사진자료들은 대부분 노정빈 선교사의 촬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그녀는 수많은 교회들을 방문했고 어려움에 처한 많은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이 끌고 다니셨던 랜드로버 차량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는데 이는 김요한 주교님의 자서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노정빈씨는 여러가지 물건을 싣고 차량(랜드로버)을 직접 운전하여 황지에 오곤했는데, 서울에서 황지까지의 도로는 한국에서도 험악하기로 이름난 길이다,(현재는 다르지만) 특별히 황지.. 더보기
황지선교와 대천덕 그리고 태백교회 개신교에서 강원도 태백이란 도시는 예수원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예수원의 역사는 60년대 성공회 대전교구의 탄광선교와의 인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공회 사제이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김요한 주교님의 사회선교의 일환으로 강원도 태백의 황지 탄광촌 선교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강원도 황지선교는 성공회 사회 선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쉽게도 이 역사는 김요한 주교님의 자서전과 약간의 사진자료, 성공회 신문에 근거한 기록만이 있을뿐, 당시 선교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알 수 없습니다. 당시 두 영국인 간호사의 의료선교나 이동진료소, 학교 교육, 젖소 분양 사업등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정리한 역사는 아직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것을 논문으로 정리해보려고 했으나, 당시 상황을 고증해줄.. 더보기
1937년 졸업사진에 찾아본 故 왕인근 교수 故 왕인근 교수(1931-2008) 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저서: '현대의 농촌사회학 '(박영사) '아프리카 농업발전' (서울대 출판부) '전향적 회고'(한림저널사)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왕인근 교수의 신명유치원 방문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yesm.kr/news/articleView.html?idxno=9818 신명유치원 출신이셨고 은퇴 후에 고향을 찾아오신 왕인근 교수님은 1931년에 태어났습니다. 1937년에는 7살이 되던 해인지라 소장하고 있는 1937년 신명유치원 졸업사진에 실려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아래 사진의 남자 어린이중 분명 한 명일 것입니다. 살아계셨을때 보여드리고 확인했으면 좋아하셨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1.. 더보기
1930년 신명유치원 기사(매일신보) 1932년 12월 06일 완공된 신명유치원 전경(출처: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 禮山初有의 音樂大會 : 수입은 신명유치원의 경비로 보조 예산 신명유치원 학부모회에서는 지난 팔일 오전 칠시에 예산 공립보통 학교 대강당에서 음악대회를 개최하얐는데 이화여전 교수 安基英씨, 중앙보육 학교 음악주임 洪蘭坡씨의 출연과 유치원 아동창가 십종과 예산자유악단 일동의 바이올린 합주와 예산청년 일동의 하모니카합주로 예산초유의 음악회로 대성황을 정(呈)하였는데 수입은 경비를 제하고는 전부 동유치원 경비의 보조에 충용하엿다. -매일신보 1930년 2월 14일 3면 기사|- [특별기고―신도성] 교회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기사입력 : 2004.08.17, 15:18 광복 59주년인 올해 8월은 한국 교회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 선생이.. 더보기
신명출신 영진이와 예진 성당 앞집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놀러왔습니다. 두 친구는 모두 신명유치원 출신이라 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만나면 항상 반갑게 인사를 하는 친구들입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성당문이 열려있으니 모처럼 성당까지 들어왔네요. 성당종도 치고 유치원도 들어가서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이곳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네요. 빈 유치원에 아이들이 서 있으니 기분이 묘하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나뭇잎을 어떻게 떼어내는지 관찰도 하고 놀았습니다. 유치원 출신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지역에서 100여년을 운영해왔는데 하루빨리 신명유치원을 기념할만한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역사와 민족의 비춰 줄 새 빛으로 잘 자라거라. 신명어린이들! 더보기